이주실 tv는 사랑을 싣고 이창호 유방암 이도란 한겨레 고등학교

TV는 사랑을 싣고 배우 이주실이 과거 학생 이창호 씨를 찾았어요. 

1993년 유방암 말기 판정 후 북한 이탈 청소년 학교인 한겨레 중고등학교에서 북한 이탈 청소년을 가르쳤습니다. 

탈북 청소년들을 위해 2006년 최초로 설립 한겨레 중고등학교에서 첫 개교 멤버로 학생들을 위한 연극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예술치료로 북한 이탈 학생들이 받은 상처와 자신의 아픔을 극복했다고 했어요. 

이창호는 당시 18살로 배우 꿈을 가진학생이었고 북한에서 남한까지 온 청년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2009년 동국대학교 연극학부에 입학했지만 2010년 연락이 끊긴 겁니다. 


이주실은 이창호를 가르치며 암 완치 판정을 받았는데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지 알고 싶고 무얼 잘못한 게 있다면 다시 만나 풀고 싶다고 했어요. 

냉소적인 아이로 피부가 하얀 아이가 잘 웃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해요.  큰 소리나 어떤 특별한 소리를 들으면 잘 놀라고 심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며 8세에 북한을 떠나 도망자 신세가 되니까 중국에 있을 때도 놀면서도 주위를 경계했다고 하네요. 


과거 암 투병 이미 끝이라고 생각했고 딸들도 살고 나도 사는 법은 외국에 있는 동생에게 두 딸을 부탁하고 특수한 곳을 다니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잘 지내는 것을 보고 큰 아이가 한국으로 오고 싶다 해서 딸에게 한겨레 중고등학교를 소개해 탈북 청소년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창호의 교육을 위해 아버지가 한국행을 결심했고 한국에 오기 위해 3달 정도를 걸었다고 합니다. 


서울생활이 힘들었던 그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고교 동창을 통해 행방을 알았습니다. 

이주실이 윤정수, 김용만과 함께 도착한 곳은 동국대학교였습니다. 

이창호 씨는 선생님을 외쳤어요. 잘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차마 연락을 드릴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주실은 꼭 배우여야만 하지 않고 인생이란 가다보면 여러 여건 때문에 수정되고 지금 밝게 잘 살고 있는 게 느껴져 눈물이 쏙 들어간다고 했어요. 

이창호는 선생님은 늘 응원해주셨는데, 제 경제적인 사정으로 제가 힘든 건 저만 힘들고 싶었고 부모님에게도 손벌리고 싶지 않아 방학 때 웨이터도 해보고 핸드폰 조립도 했지만 학기가 시작되면 용돈이 필요해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어머니처럼 진심으로 다가오셨고 서서히 부담감 없이 만났고 진실되게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안 열 사람은 없다고 했어요. 

이창호 씨는 대학교를 자퇴했고 배우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밝게 지금 잘 살고 있는 게 느껴지고 지금의 일을 응원할 것이고 근성이 있어서 이걸 할 거다 하면 꼭 이루어내는 친구라고 했어요. 

이주실의 딸 이도란 씨도 나타났고 서로 장난을 쳤어요.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기분이고 찾느라 고생을 했다고 하며 창호가 아프고 적적했을 까봐 걱정을 많이 했고 사람이 가장 흔들릴 때는 외로울 때 라고 했어요. 

이창호 씨는 이주실과 이도란 씨에게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며 스승의 은혜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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